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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레드펄(3등객실), 제주-완도

Lomo 2017. 11. 14.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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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7.

한일레드펄

제주-완도

3등객실












제주에서의 365일. 딱 일 년이라는 시간동안 제주에서 지내보았다.

그곳을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도 몰랐다. 

심지어 떠나는 배가 기상악화로 인해 

제주에서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예정보다 3시간 늘어났을 때까지도 몰랐다.













알 듯 모를 듯 미묘한 감정 속에서 제주의 일상적인 풍경은 

그 첫날부터 이미 이상적인 풍경으로 변한 준비가 완료되어있었던 것이다.

차를 배에 싣고 출항을 기다리는 순간까지도 

제주의 그렇게 시간은 느리게 흐르기만 했다.







속도를 내고 제주의 앞바다를 질주하는지도 몰랐다. 

출발 예정 시각으로부터 약 10여분이 흐른 뒤에 갑판으로 나가보았다. 

배의 뒷전으로 제주도가 보였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떠난다는 것과 헤어짐 같은 그 모든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은 

새로운 출발을 암시하고 있는 것을 말이다.

 






한라산은 이미 산허리부터 그 위로는 구름 속에 휩싸여 보이지 않았다. 

양떼 같은 양떼구름이 파란 하늘을 수놓고 있었지만, 

해상은 전체적으로 옅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일 년 중 2할의 시간은 섬에 지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종종 육지로 가기 위해 떠난 적도 있었지만, 

정말로 떠나는 순간은 감회가 달랐다.




 



직장과 서산을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도망치듯이 나왔다. 

하지만 도망치듯이 떠나는 것은 실제로 도망친 것은 아니다. 

히피가 거지같지만 거지가 아니듯이 말이다. 

엔진의 진동은 느껴지지만 별다른 흔들림 없는 배는 

꽤나 빠른 속도로 섬과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오히려 섬이 이전보다도 

한눈에도 잘 들어오고 보기 좋게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프랑스 파리에서 에펠탑 근처보다 

웬만큼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을 때 

보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였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 모든 해답은 그 끝이라는 마지막에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과학적으로는 해가 지고 떠오른다는 표현은 물론 잘못된 표현이지만, 

우리는 해가 지고나면 다음 날 다시 떠오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결국 일몰이 가지는 의미는 또 다른 일출이 찾아온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해가진다는 것과 떠난다는 것 

그리고 이별이라는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아침과 새로운 곳 그리고 만남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눈물이 나오는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배가 출발한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섬은 점점 옅어지다가 결국에는 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래서 신비의 섬으로 불리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사라지기 전 안개 속으로 사라지기 전 

희미하게 한라산 능선이 보이던 곳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물론 나는 떠나는 순간이었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목표로 하는 어떤 곳으로 다가갈 때 

실제로 보여야하는 거리보다 훨씬 가까이 다가가야지만, 

그 목표한 곳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목표를 향해서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붙을 때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나기 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 목표가 이루어지기 직전까지도 아무런 성과가 없게 

느껴질 수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손을 뻗으면 잡힐 것만 같은 높이에 

땅콩항공의 여객기가 신비의 섬을 향해 비행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순간. 

그러니까 죽음의 순간을 항상 떠올리며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항상 떠나는 마음으로, 항상 헤어지는 심정으로 말이다. 

떠남과 헤어짐은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바로 삶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모든 일상적인 삶의 순간들은 그저 그렇게 흘러서 

지나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감각적이고 행복하게 즐길 수가 있는 

축제의 연속으로 변해있을 것이 분명하다.





 

제주에 살아본 사람으로서 이삼일 제주를 여행하고 

섬을 마치 다 돌아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다. 

본인은 일 년을 살면서도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매일매일 섬 전역을 누비며 돌아다닌 것도 아니지만, 

실제로 그랬다고 할지라도 모든 곳을 돌아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단지 어떤 곳을 차로 지나친다거나 걸었다고 해서 

그곳을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정답은 바로 떠나는 기분으로 그곳을 둘러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 마지막 순간이라고 되뇌며 

그곳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면 온전히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삶을 살아가다보면 누군가 헤어지는 순간, 

어떤 곳을 떠나는 순간이 강항 인상을 주는 기억으로 

남는 이유를 떠올려본다면 

앞선 이야기들이 조금은 이해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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