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Camino Francés D+5]
2015-11-19 목요일, 맑음
Puente la Reina → Estella(M. Hospital de Peregrinos)
22 km(누적 113 km)
피곤하기 때문에 침대에 누웠다가 다시 눈을 뜨면 아침일 정도로 푹 잘 수 있다.
그리고 별도로 알람 설정을 하지 않아도
알베르게에서는 다른 순례자들은 알람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깊은 잠에 들기는 하지만 타지인 탓에 약간 소리에도
긴장한 몸은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눈을 뜨면 대체로 6시이다.
이 날은 일어나자 마자 전날 미리 사두었던 쌀을 가지고 주방으로 향했다.
이른 시각이지만 몇몇 순례자들은 떠날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잠이 덜깬 눈으로 밥을 하기 시작했다.
남은 쌀을 짊어지고 가지 않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많은 양으로 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문인지 위쪽의 쌀이 채 익기도 전에
아래쪽은 타기 시작했다.
불이 아니라 핫플레이트라서 불조절에도 어려움이 따랐다.
급하게 물을 더 넣고 겨우겨우 쌀을 모두 익혀서 밥을 완성할 수 있었다.
아래쪽이 약간 타서 약하게 탄내가 났지만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뜨거운 물에 인스턴트 국 블럭을 넣었다.
밥에는 가루 조미료를 뿌린 뒤 비벼서 먹었고
남은 밥은 주먹밥으로 만들어서 점심에 먹을 요량으로 배낭에 넣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미국인 순례자 쉬반은
'라이스볼'이 매우 간편해보인다고 칭찬해 주었다.
알베르게를 나온뒤 마을을 한참걸어서 빠져나왔다.
전날에는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푸엔테라레이나의 다리를 건넘과 동시에
마을에서는 완전히 벗어날 수가있었고 곧이어 흙길로 된 까미노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까미노에서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무거웠던 가방에도 어느정도 적응할 수 있었고
끝없이 이어진 숲길 속에서도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길가에 나있는 작은 나무들에는 달팽이가
이슬과 함께 무수히 많이 붙어있었다.
안개 낀 숲길을 한참을 걷다보니 급 경사가 나타났다.
그다지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다.
눈한번 질끔감고 오르기 시작했다.
언덕을 오르니 고속도로 옆으로 난 평지가 나타났다.
한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길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 아침 바로 시작부분이었던 것이다.
점점 걸으면 걸을수록 많던 생각들도 사라져 갔다.
종잡을 수 없이 떠오르던 수많은 생각들과 고통도 서서히 무뎌져만 갔다.
가히 무념무상으로 길을 걸을 수가 있었다.
길가에서 종종 돌들이 쌓여있는 돌무더기를 만나곤 한다.
수많은 이들의 꿈과 소망 그리고 사랑과 열정, 용서와 버림의 돌들이 쌓여있다.
너무 힘이들면 작은 돌멩이 하나 주워서 돌무너기 위에 올려놓는 행동 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기온은 따뜻했고 하늘은 푸르고 화창했다.
황량한듯 보이지만 들판을 가로지르는 깅을 따라 걷다보면
왠지모르게 마음은 고요해지고 행복한 바람이 마음 속에서 불었다.
처음에는 끝없이 펼쳐지는 포도밭을 따라 걷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그런 소망은 이루어지기가 무섭게
포도밭이 없는 길을 걷고 싶다는 또다르 소망이 생겨났다.
그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포토밭이었다.
길을 따라 걷다가 이름모를 작은 마을에서 만난 스페인 아저씨는
친근하게 인사를 하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물었고
Mundo(세상)가 있다며 길에서 벗어나서 안내한 곳에는
경사진 들판에 나무로 조경해서 만든 세계지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아저씨는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나도 멋진 모습에 'Muy bien!'이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유쾌한 아저씨가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안내가 없었더라면
이런 광경은 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넓은 벌판을 지나서 도로를 따라 걷다보니 가을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선선한 공기와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길을 따라 걸었다. 기분이 좋았다.
돌로 만들어진 화살표를 만날 수 있었다.
길을 걷다보면 이런 화살표나 글을 종종만날 수가 있는데
그 크기 또한 천차 만별로 다양하다.
한참을 걷다가 만난 작은 마을 쉼터에서 주저앉았다.
샘터에는 'AGUA NO ~!@#$%' 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동네 어르신은 'PORTABLE'이라고 알려주었다.
이끼가 끼고 미관상 좋아보이지는 않았지만,
갈증도 많이 났기에 신경쓰지 않고 마실 수 있었다.
다행히 물맛은 아주 좋았다.
다들 생각이 비슷한지 그곳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더니
앞뒤에서 뒤쪽에서 걸어오던
여러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언제난 무심하게 'Hi'라고 인사하며 지나가는 백인아저씨를 포함하여
다른 한국인 순례자 무리들도 만날 수 있었다.
아침에 만든 주먹밥과 오렌지를 까먹는다.
사실 냄비로 지은 밥이기 때문에 완전하게 익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맛을 아주 좋았다.
저렴하고 커다란 오렌지는 생각보다 시지도 않고 달지도 않았다.
하지만 다음에 다시 기회가 온다며 더 많은 Naranja(오렌지)를
먹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해본다.
몇일 전부터 아주 먼 곳에서 보이던 절벽같은 언덕이 성큼다가와있음을 느낀다.
다와가는가 싶지만 아직 도착해야할 마을은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다지 먼 거리를 걸은 것은 아니지만 몸은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하지만 정신은 점점 더 맑아져 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계곡처럼 양쪽이 언덕으로 둘러쌓인 숲을 통과했다.
대체 마을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길을 잃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무렵
마을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을 볼 수가 있었다.
생각보다 크고 길쭉한 마을이었기 때문에
마을 입구로 들어선 후에도 한참을 걸어 들어가서
목적지인 알베르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큰 마을이라 그런지 알베르게가 여러 곳 영업하고 있었지만,
가격면에서 저렴한 공립 알베르게로 가장 먼저 갔다.
시설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기 때문에
별다른 고민없이 그곳으로 정했다.
골목은 상당히 황량하지만 매우 큰 마을이었다.
걷다보니 사진을 찍어서 남기는 일에 대한 열정이 가장 먼저 시들어 갔다.
이후 장을 보기 위해 마트까지 갔다왔으나 마을 사진이 한장도 없다.
앞서 도착한 몇몇의 순례자들이 있었고 그들이 먼저 씻을 때까지
기다린 뒤 씻고 옷은 별다른 고민없이 세탁기에 넣어버렸다.
처음에는 손빨래를 계획하였으나 빨래가 문제가 아니었다.
제대로 건조가 되지 않으면 젖은 옷을 매달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손빨래를 하고 건조기를 사용해서 말리는 비용은
그냥 세탁기로 빨래하고 건조기를 사용하는 비용과 별차이가 없었다.
빨래를 세탁기에 넣으러 가던 도중에 뒷마당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단지 친구인줄로만 알았던 이태리 형 2명이 커플이었다는 것이다.
일전부터 둘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또다른 이태리 여성이 한명더 있어서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둘이 선채로 껴안고 눈을 감은채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놀랍기는 했지만 그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뿐
유럽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기에 내색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했다.
짧은 시간동안 여러 생각이 오가는 동안 누군가가 나를 불러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 장소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샤워를 해서 개운한 기분으로 장을 보기 위해 나섰다.
팜플로냐에서 가지 못했던 'ORANGE' 통신사 매장을 찾을 수가 있었다.
20를 내고 USIM카드를 개통했는데 그 날 있었던 일들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 었다고 떠올려 본다.
그리고 원래 찾던 마켓에 도착하기 전에 만난 카르푸 익스프레스
매장으로 들어갔다. 익스프레스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매장이 컸다.
이것저건 고르고 구매를 하며 소소한 쇼핑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꽤 많이 산다해도 대체로 식료품 가격은 저렴했기 때문에
얼마 들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온 뒤 요리를 시작했다.
이런저런 재료들로 파스타를 만들기 위해 일단 파스타 면부터 삶았다.
푸실리를 삶는 동안 뚜껑을 덮어 놓은 채로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항공사 승무원인 이탈리아인 '안토니'가 불도 낮춰주고 뚜껑도 반쯤 열어둔것이 아닌가
그의 세심한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려는 찰나 갑자기 든 생각이 있었다.
내가 대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에 이르자
흥분되기도 했고 긴장되었다. 바로 이탈리아 사람 앞에서 파스타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비유를 하자면 외국인이 김치찌개를 끓이는 것 정도 될 것이다.
별다른 말은 안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볼 때 그의 얼굴의 표정에서는
'생각보다 잘 만드는데...' 라는 의미가 아니었을지 내 마음대로 상상해본다.
걱정과는 달리 별다른 실수 없이 파스타와 샐러드를 완성했고
저렴한 와인과 함께 저녁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비록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이런 곽에든 와인은
요리용 와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맛은 나름대로 괜찮다.
그렇게 배부르게 먹은 뒤 이렇게 잘 먹어도 되는가에 대한
의문의 해답을 구하기도 전에 잠에 빠져들었다.
일기도 쓰지 못한채 말이다.
몇일 뒤 밀린 숙제를 하듯이 일기를 쓰느라 고생을 했다.
알베르게는 Municipal이라고도 표기되어있다.
6 EU이기는 하나 매우 추천한다.
* Estella
Mercado ○
Cafe ○
Restaurant ○
ATM ×
M. Hospital de Peregrinos
6 EU
Cocina ○
Lavadora ○
WiFi ○
Vend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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